음 좀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중간에 빈 부분이 있더란
대우를 떠나서
중국에 들어갔을때
중국 중앙국영기업(181개인가 밖에 없음)과 한국 대기업의 합자법인으로 옮겨간것
당시 개혁개방 시험으로 딱 3개만 만든 합자기업인데
한국계가 2개
일본계가 1개
그렇게 3개 기업이 상하이에 만들어 진것
어쨌던
그 경험이 아주 중요한것이라
당시 한국인들은 중국인들과 다 원수였는데
나만 유일한 교량?
중국인들과 관계가 좋았음
아마도 중국어도 있을거고…… 문화에 대한 이해 정도?
중국 여친들을 많이 사귀어서,
중국애들하고 오래 놀아서?
어쨌던
덕분에 능력 대비 과분한 일을 늘 했었고
그게 발전에 도움이 된 것
이게 한국기준 어리니까 30대 극초반인데, 팀장을 하고
대외적으론 총경리 (사장급) , 총책임자
그래서 중국의 자수성가 대기업 회장들 (이게 81년 개혁개방이라… 당시 부자는 다 자수성가)
수많은 고위직 정부 관료를 직접 동등한 위치에서 만날수 있었고
덕분에 지금 생각하면, 무형의 자산을 많이 얻은게
어리니까
그분들이 참 스승처럼 잘 지도해주심
중국은 이렇다. 중국 공산당은 이렇다. 중국의 정부 관료는 이렇다.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
이런 것
또 정부 관료 자제들도 중국인이 이렇게 말하는 것 뒷배경은 뭐다.
앞에서 하는 말뒤에 숨겨진 말이 훨 많다 그걸 설명해줘서
그것이 십수년 쌓인게
참 개인적으론 도움이 되었는데
어쨌던
그래서, 늘 부족하다고 느끼게 되고, 부족하니까 공부를 하게 되고
어릴때 공부를 게을리 한 걸
나중에 억지로 메꾸는 개고생의 삶을 살았는데
그래서 중국에서 진행한 프로젝트가 뭐냐?
거래소에 들어가서
초대형 커머디티 표준 계약을 만들고 그것을 활성화 시키는 작업을 해야 하는 것
표준 계약에 수많은 개혁, 아이디어들을 넣고 실현 시키는 작업
상당히 도전적이고 개힘든 작업인데
이게 칠살 보유자의 문제점
그럴수록 해보고 싶은것
그래서
2년을 집에도 못가고, 잠도 2-3시간 밖에 못자는 삶을 시작하게 된다.
왜 집에 못 갔냐면
그게 상하이가 아니라서
어쨌던 금융기관에서 일하는 셈인데
인생이 참 잼난게
예전에 어릴때 무역할때는 철강회사 수출 담당자 (과장급)에게도 굽실거려야 했는데
투자할 때는 정말 고위급만 만나고, 그 고위급들이 나에게 굽실거리고
갑/을을 계속 전환
선물 거래 그런거 할때는 조용히 사무실에서 아무도 안만나고 자료나 읽고 , 데이터나 보고 그러다가
다시 표준 계약서 만드는데
와 공부해야 하는게 산더미
진짜 사업개발하면서 공부 했던것의 몇 배
도대체 거래단위를 10톤으로 해야할까 50톤, 100톤으로 해야할까 이런 간단한 것 부터 시작해서
실제 현물 교환이 이뤄져야 하는 장소는
리스크는
등등 그 걸 설계하는 입장이 되니까 …
누가 어떻게 악용할까? 부터
생각할게 너무 많아짐
게다가 맨날 그쪽 전문가들하고 토론하고 또 토론하고
아침부터 새벽까지 일하고
철강회사, 금융기관, 대형 투자자들 만나서
리서치하고
아주 인생 최고로 빡세게 살아야 했던 시기인디
물론 삶은 좀 머랄까
겉보긴 좋음
최고급 호텔의 엄청 큰 방에서 2년간 살았음
배고프면 다…. 룸서비스로 해결
새벽2시에 먹는 피자….
물론 몸무게는 미친 속도로 올라갔지만
정말 열심히 사셨군요 유식님한테 풍기는 배움의 아우라가 괜히 나오는게 아니였던ㅋㅋㅋㅋ 마지막 살크업에 빵터졌네요 지식과 경험, 살도 같이 득템...
오 비슷한 느낌인데 ㅋㅋ스케일이 다른🤣
정말 온몸을 불사라서..잠도 안주무시고..재밌고 신나게 일하시는듯요. 직장생활 중에 다양하고 엄청난 업무들을 하시면서..많은 고위급 인사들 만나면서 인생의 성찰과 배움도 많이 얻으셨을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