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휴대폰 잘 나가는 진짜 이유: 기술 도둑질 프레임을 넘어선 냉정한 분석
- 10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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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서 중국 휴대폰 판매가 늘었다는 뉴스가 나오면 댓글란에는 어김없이 "삼성 기술 훔쳐갔다", "짝퉁 만들어 팔더니"라는 반응이 올라온다. 한국 제조업의 자존심이 상했다는 감정은 이해한다. 하지만 2025년 현재, 이런 프레임으로는 상황을 제대로 볼 수 없다. 화웨이가 2019년 미국 제재를 받고도 2024년 R&D 투자 179.7억 달러를 집행했고, 샤오미가 전년 대비 25.9% 늘린 24.1억 달러를 연구개발에 쏟아붓는 현실 앞에서, "도둑질" 프레임은 설명력을 잃는다. 냉정하게 숫자를 봐야 할 때다.
R&D 투자 규모: 절대 금액과 매출 대비 비율
2024년 기준 주요 제조사의 연구개발비를 보면 애플이 313.7억 달러로 가장 많고, 삼성전자가 약 220억 달러(30조 원), 화웨이가 246.3억 달러를 기록했다. 절대 금액만 보면 애플과 삼성이 앞서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매출 대비 R&D 비율을 계산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화웨이는 매출의 20.8%를 연구개발에 투입한다. 삼성은 11.0%, 애플은 8.0%다. 샤오미는 8~9%, 오포는 추정치로 7~8% 수준이다.
화웨이가 매출의 5분의 1을 R&D에 쓴다는 건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치다. 이는 미국 제재로 구글 서비스와 첨단 반도체 공급이 막힌 상황에서, 자체 기술 개발 말고는 살아남을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화웨이는 2019년 이후 독자 운영체제 하모니OS를 개발했고, 5G 특허에서는 전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2024년 말 기준 화웨이가 보유한 5G 표준필수특허(SEP)는 약 6,500건으로, 전체 5G 특허의 약 15%를 차지한다. 삼성은 약 2,800건으로 6% 수준이다. 이 숫자는 ETSI 데이터베이스에 공개된 선언 기준이며, 실제 유효 특허는 더 적을 수 있지만 상대적 격차는 유지된다.
현지 소비 수준을 반영한 구매력 평가
단순 달러 환산 R&D 비용은 각국의 임금과 생활비 차이를 반영하지 못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제공하는 구매력평가(PPP) 지수를 적용하면, 같은 돈으로 현지에서 얼마나 많은 인력과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지 비교할 수 있다. 2024년 PPP 환율 기준으로 중국 위안화는 3.43 위안당 1국제달러, 한국 원화는 775.49원당 1국제달러다. 미국 달러는 1대1이다.
이 기준으로 환산하면 화웨이의 R&D 투자는 실질적으로 524억 국제달러 가치를 갖는다. 삼성은 387억 국제달러, 애플은 313.7억 국제달러다. 화웨이가 현지 소비 수준을 고려했을 때 가장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는 뜻이다. 중국의 평균 임금은 미국의 약 5분의 1 수준이지만, 공학 인력의 양과 질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 2023년 중국은 약 130만 명의 이공계 대졸자를 배출했는데, 이는 미국(약 57만 명)의 2배가 넘는다.
화웨이의 불꺼지지 않는 사무실
화웨이 본사가 있는 선전의 반포(坂田) 캠퍼스는 밤 10시가 넘어도 불이 꺼지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 2019년 제재 직후, 화웨이는 전 직원에게 "생존 모드"를 선언했다. 주 6일 근무는 기본이고, 핵심 프로젝트 팀은 밤샘 작업이 일상이었다. 이건 미화할 일은 아니지만, 기업 생존을 위한 전사적 동원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삼성전자 수원 사업장도 주말에 불이 켜져 있지만, 화웨이의 강도는 다른 차원이다. 중국 노동법이 느슨한 것도 한 원인이지만, 제재 국면에서 "기술 자립 아니면 죽음"이라는 절박함이 조직 전체를 움직였다.
특허 출원 건수와 질의 변화
특허는 양보다 질이 중요하지만, 양 자체도 투자 규모와 연구 역량을 반영한다.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국제 특허 출원(PCT) 건수에서 중국이 7만 건을 넘어 미국(5.9만 건)을 제쳤다. 화웨이는 2023년 기준 PCT 출원 1위 기업으로, 7,689건을 출원했다. 삼성전자는 4,355건으로 3위, 애플은 상위 10위권 밖이다.
물론 특허 출원 건수가 많다고 다 유효한 기술인 건 아니다. 중국 기업들은 방어적 특허와 중복 출원도 많다. 하지만 최근 10년간 중국 기업들의 특허 인용 지수(Citation Index)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2015년 중국 특허의 평균 인용 횟수는 미국 특허의 40% 수준이었지만, 2023년에는 70%까지 좁혀졌다. 이는 특허의 질이 개선되고 있다는 신호다.
화웨이의 키린(Kirin) 9000S 칩은 2023년 출시된 메이트60 프로에 탑재됐는데, 미국 제재 하에서도 7나노미터 공정으로 제작됐다. 이는 중국 반도체 기업 SMIC와의 협력으로 이뤄졌고, 서방 장비 없이도 첨단 칩 생산이 가능하다는 걸 증명했다. 미국 정보기관과 산업계는 이 칩의 등장을 "예상보다 빠른 돌파"로 평가했다.
삼성과 애플의 전략적 차이
삼성전자는 R&D 투자의 절반을 반도체 부문에 쏟고 있다. 스마트폰 사업부는 상대적으로 적은 자원으로 운영되는데, 이는 삼성이 부품(디스플레이, 메모리)과 완제품(스마트폰)을 동시에 생산하는 수직 계열화 전략 때문이다. 애플은 자체 칩(A시리즈, M시리즈) 설계에 집중하고, 제조는 TSMC에 맡긴다. 소프트웨어 생태계(iOS, 앱스토어)에서 수익을 내는 구조라 R&D 효율이 높다.
반면 중국 기업들은 브랜드와 생태계에서 아직 약하다. 화웨이는 하모니OS를 밀고 있지만 앱 생태계가 취약하고, 샤오미와 오포는 구글 서비스에 의존한다. 하지만 하드웨어 혁신 속도는 빠르다. 샤오미는 2024년 초 샤오미14 울트라에서 라이카 협력 카메라와 차세대 고속 충전 기술을 선보였고, 오포의 폴더블 폰 파인드N3는 삼성 갤럭시Z 폴드보다 얇고 가벼워 평가받았다.
중국 정부 지원의 역할
중국 기업들의 R&D 투자에는 정부 보조금이 포함돼 있다. 화웨이는 2019년 이후 중국 정부로부터 약 20억 달러 규모의 직간접 지원을 받았다는 분석이 있다. 이는 R&D 총액의 8% 정도다. 삼성과 애플은 정부 보조금 비중이 훨씬 낮다. 미국과 한국도 반도체 산업에 보조금을 주지만, 중국처럼 특정 기업에 집중 지원하지는 않는다.
이런 지원이 불공정 경쟁이라는 비판은 타당하다. 하지만 지원금만으로는 기술 격차를 설명할 수 없다. 화웨이가 5G에서 앞서 나간 건 2009년부터 10년 넘게 투자했기 때문이고, 샤오미가 인도 시장 1위를 차지한 건 가성비와 현지화 전략 때문이다. 정부 지원은 가속 페달이었을 뿐, 방향을 정한 건 기업 자체였다.
기술 이전과 도둑질 프레임의 한계
2000년대 중반까지 중국 기업들이 외국 기술을 모방하고 지식재산권을 침해한 건 사실이다. 삼성 직원이 중국 기업으로 이직하면서 설계 도면을 유출한 사건도 여러 건 있었다. 하지만 2025년 현재 중국 기업들은 모방 단계를 넘어섰다. 화웨이의 5G 장비는 에릭슨, 노키아와 경쟁하고, 샤오미의 서지S(澎湃S) 칩은 자체 설계다. 오포의 초고속 충전 기술(240W 슈퍼VOOC)은 업계 최고 수준이다.
"기술 도둑질"로 이 모든 걸 설명하려면, 중국 기업들이 지난 10년간 수백억 달러를 투자하고 수십만 명의 엔지니어를 고용한 사실을 무시해야 한다. 그건 현실을 외면하는 거다. 삼성이 2024년 4분기에 R&D를 10.3조 원 썼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 댓글에는 "이래야 중국 따라잡는다"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숫자를 보면 삼성은 이미 충분히 쓰고 있다. 문제는 투자 규모가 아니라 투자의 방향과 속도, 그리고 시장 대응력이다.
냉정하게 봐야 한다.
중국 휴대폰이 잘 나가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R&D 투자 규모, 현지 소비 수준을 고려한 비용 효율, 특허 축적, 조직의 강도 높은 노력, 정부 지원이 모두 작용했다. 이 중 어느 하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감정적 반발로 "도둑질"이라고 몰아붙이는 건 상대를 과소평가하는 동시에 우리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경쟁자를 제대로 알아야 대응할 수 있다. 2025년 현재, 중국 기업들은 기술 추격자에서 일부 분야에서는 선도자로 전환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다음 수를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특히 오만하다면, 결국은 쓰러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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