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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제도는 없다

  • 4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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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민주주의를 논할 때 스웨덴을 빼놓을 수 없다. 1990년대까지 스웨덴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완벽한 균형을 이룬 모델로 평가받았다. 높은 세금, 광범위한 복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지되는 경제 성장. 교과서에 실릴 만한 성공 사례였다.


2025년 현재, 스웨덴의 복지 지출은 GDP의 29.5퍼센트에 달한다.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치다. 하지만 2024년부터 예산 적자가 확대되기 시작했고, 연금과 의료 삭감 논란이 불거졌다. 2015년 난민 유입 이후 특정 지역의 범죄율은 300퍼센트 증가했고, 2024년에는 갱 폭력으로 인한 폭탄 테러가 149건 발생했다. 청년 실업률은 높아지고, IKEA와 Volvo 같은 대기업들은 본사를 해외로 이전했다.


스웨덴 민주당은 2022년 총선에서 22퍼센트를 득표하며 연정에 참여했다. 이들의 주요 공약은 이민 제한과 복지 축소였다. 30년 전만 해도 극우로 분류되던 주장이 이제는 집권 연합의 핵심 정책이 됐다.


덴마크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복지 천국이라 불리던 이 나라는 2025년 세금 인상을 중단했고, 이민자 복지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장기 실업자의 40퍼센트가 복지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유권자들은 더 이상 관대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


뉴욕 시의원 조란 맘다니는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뉴욕에 이식하려 한다. 무료 버스, 무료 육아, 시 소유 슈퍼마켓, 억만장자에 대한 고율 과세. 도덕적으로 올바른 방향처럼 들린다. 하지만 뉴욕은 스톡홀름이 아니다.


뉴욕시 예산은 110억 달러다. 맘다니의 정책을 실행하려면 최소 10억 달러 이상의 추가 재원이 필요하다. 예산의 10퍼센트를 신규 복지에 투입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부채 증가나 연방 정부 의존을 의미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자금을 차단하겠다고 위협한 적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재정적 자율성이 더욱 중요해진다.


뉴욕 인구의 37퍼센트는 이민자다. 맘다니는 이민자에게 무료 법률 지원과 복지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스웨덴의 사례는 고복지가 자석 효과를 낳고, 이것이 주거와 교육 자원을 둘러싼 경쟁을 심화시킨다는 점을 보여준다. 프랑스에서는 광범위한 복지에도 불구하고 빈곤층 이민자들이 소외됐고, 2023년 폭동이 발생했다.


핀란드의 청년 실업률은 18.5퍼센트다. 복지가 충분히 보장되면 일하지 않아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복지 함정 현상이 나타났다. 노르웨이는 석유 산업 외에 스타트업의 GDP 기여도가 2퍼센트에 불과하다. 미국의 8퍼센트와 비교하면 혁신 동력이 현저히 낮다. 스웨덴은 2000년대 이후 유니콘 기업을 하나도 배출하지 못했다. 미국이 600개 이상을 만들어낸 것과 대조적이다.

맘다니는 억만장자가 필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뉴욕은 월가와 테크 산업으로 유지되는 도시다. 골드만삭스는 이미 뉴욕 탈출을 논의 중이다. 기업 세금을 인상하면 뉴저지나 텍사스로의 이주가 가속화될 것이다. 실리콘앨리는 이미 쇠퇴하고 있다.


EU 전체의 GDP 성장률은 1.2퍼센트다. 미국은 2.5퍼센트다. AI와 반도체 분야에서 유럽의 투자는 미국의 5분의 1 수준이다. 고비용 구조는 글로벌 경쟁에서 유럽을 밀어냈다. 뉴욕이 글로벌 금융 중심지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려면 런던이나 홍콩과 경쟁해야 한다. HSBC는 이미 아시아 중심으로 전환했다.


한국의 상황은 더 기묘하다. 한국에는 극우도 없고 극좌도 없다. 사실 좌우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시장경제를 지지하고, 미국 동맹을 유지하며, 북한을 경계한다. 두 정당의 경제 정책 차이는 유럽 기준으로 보면 미미하다. 복지 지출 규모로 따지면 둘 다 보수 정당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치는 격렬하게 대립한다. 2024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192석을 얻었고, 국민의힘은 108석을 얻었다. 득표율 차이는 2퍼센트였지만, 의석수 차이는 압도적이었다. 선거 직후 양측은 상대를 독재자, 공산주의자, 친일파, 매국노로 규정했다. 하지만 정책 토론은 거의 없었다.


연금 개혁을 예로 들어보자. 한국의 국민연금 기금은 2055년경 고갈될 것으로 예상된다. 출산율은 0.72명으로 세계 최저다.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다. 이는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 산술의 문제다. 보험료를 올리거나 수령액을 줄이거나 수령 시기를 늦춰야 한다. 선택지는 세 가지뿐이다.

하지만 여

야는 이 문제를 놓고 10년째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야당이 개혁을 막는다고 말하고, 더불어민주당은 여당이 책임을 회피한다고 말한다. 실제로는 양측 모두 유권자의 반발이 두려워 결정을 미룬다. 2024년 연금 개혁안은 국회에서 표결조차 되지 않았다.


건강보험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65퍼센트 수준이다. OECD 평균 80퍼센트보다 낮다. 중증 질환에 걸리면 가계가 파산하는 사례가 흔하다. 보장률을 높이려면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 하지만 어느 정당도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부동산 정책은 더 혼란스럽다. 문재인 정부는 25차례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윤석열 정부는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결과적으로 서울 아파트 가격은 두 정부 기간 동안 모두 상승했다. 정책의 방향은 정반대였지만, 결과는 같았다. 이는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 수요와 공급의 문제였다.

한국 정치에서 좌우 대립은 실제 정책 차이보다는 정체성과 진영 논리로 작동한다. 전라도 대 경상도, 586세대 대 2030세대, 서울 대 지방, 공무원 대 자영업자. 이런 균열선은 이념과 무관하다. 하지만 정치는 이를 좌우 프레임으로 포장한다.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은 0.73퍼센트 차이로 당선됐다. 24만 표 차이였다. 하지만 당선 직후 양측은 압도적 승리와 치욕스러운 패배라는 서사를 만들었다. 정책 공약은 선거 직후 잊혔다. 남은 것은 승자와 패자라는 구도뿐이었다.


한국 유권자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정책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2023년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자의 68퍼센트는 자당의 경제 정책을 설명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양측 모두 상대 정당에 대한 적대감은 명확했다.


이는 한국 정치가 정책 경쟁이 아니라 정체성 경쟁으로 작동한다는 뜻이다. 좌우가 없는데 좌우 싸움을 하는 이유다. 실제로는 누가 집권하든 비슷한 정책을 펼친다. 재벌 개혁은 늘 구호로 끝나고, 부동산 규제는 시장 상황에 따라 반복되며, 복지 확대는 재정 여건에 막힌다.



1990년대 스웨덴 모델이 성공한 이유는 단순했다. 동질적인 인구 구성, 풍부한 자원, 높은 사회적 신뢰, 그리고 냉전이라는 특수한 지정학적 상황. 이 조건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화는 자본과 인구의 이동을 가속화했고, 기술 혁신은 산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꿨다. 2025년의 스웨덴은 1995년의 스웨덴과 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


싱가포르는 사회민주주의가 아니다. 하지만 이 도시국가는 낮은 세율로 기업을 유치하면서도 공공 주택과 의료를 제공한다. 완벽하지 않지만,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생존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덴마크는 최근 복지 수급 조건을 강화했다. 3년 거주 후에야 육아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바꿨다. 기여 후 복지 원칙이다.


뉴욕에서 맘다니의 정책이 실행된다면 초기에는 지지를 받을 것이다. 무료 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만족할 것이고, 육아 부담이 줄어든 가정은 감사할 것이다. 하지만 3년 후, 5년 후는 다를 수 있다. 재정 적자가 누적되고, 기업들이 떠나고, 세금이 오르면 2029년 시장 선거에서 복지 축소를 외치는 후보가 나타날 것이다. 스웨덴 민주당처럼.


한국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된다. 진보 정부는 복지를 확대하겠다고 약속하고, 보수 정부는 효율을 높이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복지 지출은 두 진영 모두에서 증가했고, 효율은 두 진영 모두에서 정체했다. 문제는 좌우가 아니라 인구 구조와 산업 경쟁력이었다.


제도는 시대와 환경 속에서 작동한다. 1990년대에 옳았던 것이 2025년에도 옳다는 보장은 없다. 스웨덴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다만 성공의 조건이 변했을 뿐이다. 맘다니의 비전이 틀린 것도 아니다. 다만 뉴욕이 스톡홀름이 아닐 뿐이다. 한국의 여야가 무능한 것도 아니다. 다만 싸울 이유를 정책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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